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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경기

양평 - 기흥성뮤지엄

사사로운 여행 가이드 Mauvais sang 2021. 2. 24. 00:39

경기도 양평 가볼 만한 곳, 기흥성뮤지엄

양평 최고의 명소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조우하는 두물머리다. 이곳을 중심으로 북쪽에 위치한 서종면과 양서면은 북한강을 곁에 두고, 동쪽에 위치한 강하면과 강상면은 남한강 곁을 베고 지역의 명소들을 갖췄다.

 

두물머리는 북한강의 끝자락에 위치한다. 북한강은 이곳에서 남한강과 만나 한강의 본류를 이뤄 서울로 나아간다. 오후 늦게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남한강 이남의 풍경은 완만한 산등성이와 얼어붙은 북한강의 끄트머리 때문에 쓸쓸한 정서를 전해준다. 한강으로 가는 여정에 휴식을 맞이한 듯 북한강의 강줄기는 땅땅 얼어붙어 움직일 기미조차 없다.

풍부한 수자원은 농사에만 이로운 게 아니다. 강줄기를 따라 우후죽순 식당이며 카페가 들어서는 것을 보면, 사람을 모으고 자본을 모으는 도그마이자 굳건한 교리 이상이다. 특히 남한강 이남에서 바라본 양평은 광주산맥이 빚어낸 용문산의 위용을 관망하기에 더없이 훌륭하고, 한강 본류로 흘러가는 쪽빛 강물의 도도한 추세를 엿보는 맛이 그만이다. 목 좋은 장소에 위압적으로 세련된 건물을 짓고 카페나 식당, 모텔 간판을 걸어도 시원찮을 판에, 이런 시류를 비웃기라도 하듯 외관만으로는 이게 뭔지 감조차 잡기 힘든 기흥성뮤지엄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출처 : 기흥성뮤지엄 홈페이지(www.keemuseum.com)

지인이나 가족과 함께 맛집을 순례한 다음, 자연스레 지도앱을 켜 부근의 문화시설을 검색한다. 갤러리나 박물관이 눈에 띄면 일행을 설득해 방문하고 마는 이상한 습관이다. 지성인이 되고픈 허세라든가, 외식비 지출 후 밀려온 허무를 상쇄하려는 욕구라든가, 어렵게 결성된 모임의 기회비용을 고려한 행동이라든가, 추측들이 분분하지만, 솔직히 난 좋은 이들과 좋은 것을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갤러리나 박물관은 대개 긍정적인 경험치를 선사했으므로 적어도 여행의 3순위 안에 드는 편이다.

 

왼쪽 사진의 위는 제1전시장, 아래는 제2전시장의 광경이다. 넓은 공간에 빼곡하게 건축 모형이 가득 차있다. 오른쪽 사진의 위는 기흥성뮤지엄 2층에 마련된 갤러리, 아래는 1층의 카페 겸 레스토랑 모습이다. 사진의 출처는 기흥성뮤지엄 홈페이지다.

기흥성뮤지엄을 찾은 날에도 양평의 유명 맛집에서 정성 들여 곤 설렁탕 한 그릇에 감복한 후 지도앱을 뒤적였다. 이름만으로는 경기도 특정 지자체에 위치한 성인 박물관이라 착각할만했는데, 정보를 훑어보니 건물 모형 박물관이었다. 게다가 당분간 관람료를 받지 않겠다니! 필히 방문할 이유가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모형 전문 전시장

제1전시장 중앙에 황룡사 9층 목탑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본 목탑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대사의 건의에 의해 건립되었고, 몽골 침입때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는 경주에 터만 남아있는 상황이다. 학계 전문가들과 협업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는데 모형임에도 목건축물 특유의 장엄함과 따스함이 아우라를 품어낸다.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로 모형의 키가 커 놀랐고, 정교한 만듦새에 또 놀라게 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르길, 기흥성뮤지엄은 국내 유일의 모형 전시관으로 50년 이상 모형 제작의 외길을 걸어온 기흥성 관장이 설립했다. 기흥성 관장은 "모형 제작 기술의 발달이 국가발전의 전제조건"이라 믿으며, 유실된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뿐 아니라 미래에 닥칠 문제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에 모형을 활용할 수 있다 주장한다.

막중하고 의미심장한 사명에 잠깐 고개를 갸웃하다 이 분이 롯데월드 민속관의 모형 제작자라는 문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백제 궁궐 정전을 재현한 모형을 접사로 찍은 사진이다. 제대로 얹은 기와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그 끝으로 수막새가 보이고 그 밑으로 처마, 기둥, 문틀 등 정교한 정교한 재현에 혀를 내두르다 수막새에 새겨진 연문을 발견하는 순간 기흥성 관장의 집념과 열정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지하 1층에 위치한 제1전시장에 입장하면 홈페이지 소개글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납득하게 된다. 걸리버가 소인국에 방문했을 때의 기분이라면 설명이 될까? 아니, 중생을 굽어살피는 신적인 존재의 전지적 시점이라면 이해가 쉬울까? 손으로 깎아 끼워 맞춘 재료들이 정교하게 건축물을 재현하고 있다. 얼핏 봐도 대단한데 꼼꼼하게 뜯어보니 '경이로움'이란 이럴 때 쓰라고 아끼는 단어였다.

 

경복궁을 재현한 모형으로 규모가 엄청나다. 세세한 자연환경 묘사도 탁월해 한참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새가 있어!

꽃이 있어!

나무가 있어!

부모와 함께 온 저학년 아이들도 수선스럽지 않게 작품에 집중한다.

 

경주에 소재하고 있는 동궁과 월지다. 오른쪽 밑으로 사슴의 무리와 연못 중앙에 피어난 연꽃잎, 오리 등 세부묘사가 뛰어나다. 나무 모형도 다양해 수종을 추측하며 수다떠는 일도 재미있다. 경주에서 동궁과 월지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여행을 추억하며 즐겁고, 아직 가보지 못한 이들에겐 여행의 빌미가 될지도 모르니 설렌다.

소인국에서 보물찾기 하던 아이들이 오물오물 작은 입으로 씩씩하게 말도 잘한다. 어른들이라고 다르지 않다. 섬세한 묘사에 넋을 잃고 입만 벌리고 있거나, 아이들과 함께 소인국 탐방에 여념이 없다.

 

오롯이 서울역만 바라볼 수 있어 좋은 모형이다. 대형 쇼핑몰이 보이지 않으니 더 시원한 느낌이 든다. 제2전시장의 모형들은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건축물을 대상으로 했다.

훌륭한 교육의 현장이자 오락의 공간

제1전시장이 문화재를 소개하고 있다면 2층에 위치한 제2전시장은 현대 건축물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이 중 해체돼 지금은 직관할 수 없는 조선총독부와 대형 쇼핑몰을 증축해 몸집을 키우기 전 서울역의 옛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조금 감격적인 순간이었는데, 과거의 기억을 끌어올리는 힘이 사진보다 강력했기 때문이다. 실물을 봤고 기억하고 있는 나와 달리 사진으로만 이들을 접한 세대에게 모형은 유용한 시각적 경험을 제공할 것 같았다. 기흥성 관장 말씀대로 모형 제작은 엄청난 사명을 지녔다.

 

조선총독부 청사로 쓰이다 한국전쟁 후 미군정의 중앙청으로, 이후 정부청사로 쓰이다 종국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였다. 일제청산을 위해 1995년 철거했으나,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해체해 이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았을까? 조선총독부의 건물을 바라보며 일제의 만행을 매일 되새겼어야 했던 것 아닐까? 왠지 조선총독부 건물이 사라지며 일제의 잔혹한 식민지 역사도 탈색된 것 같아 씁쓸한 요즘이다. 장소가 없어지면 기억도 없어지는 법이니까!

전시관과 박물관을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경기도 양평에 갈 계획이 있는 지인들에게 기흥성뮤지엄에 가보라고 항상 권하고 있다. 관람을 마치면 뒷마당으로 나가 용문산 자락 앞으로 굽이치는 남한강의 절경도 구경하고 오라는 당부도 잊지 않은 채!

 

기흥성뮤지엄의 너른 뒷마당은 개방감이 좋고 여러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어 기념사진을 남기기에도 좋다. 역시 마당 너머로 남한강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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