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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전남

나주읍성 고샅길 - 야간산책

사사로운 여행 가이드 Mauvais sang 2021. 2. 24. 17:26

 

 

초행길, 나주

나주행은 갑작스레 결정되었다. 지인이 나주에 볼일이 있어 KTX를 예약했다기에, "대중교통보다는 자차 운행이 안전하지 않겠느냐?"며 제안해 버린 것이다. 그때까지 나주가 서울에서 4시간 거리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다행히 여행이란 늘 그렇듯 일상의 대화를 이어가다 결국엔 다시 목적지를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되는 법이다. 나주에서 뭘 할지, 무얼 먹을지, 기대가 충만해지면 운전의 피로감은 남의 이야기다.

빛가람, 혁신도시의 위용

목적지 부근에 이르자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초고층의 아파트와 상업 건물들의 치솟은 기세가 '첨단(尖端)'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빛'과 강의 옛말인 '가람'을 합쳐 지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광주와 나주평야의 혈맥인 영산강이 이곳의 탄생 배경이다.

 

빛가람호수공원을 내려 찍은 사진으로 왼편에 위치한 건물은 빛가람 전망대다. 공원 뒤쪽에 아파트와 빌딩들이 보인다. 평야지대 답게 주변에 높은 산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출처는 나주시청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광주와 전라남도 2개의 지자체가 중지를 모아 건설한 국내 최초의 초광역 혁신도시라고 한다. "세계의 도시들이 지식기반 선진도시로 진화하는 추세라 지식창조도시, 환경생태도시, 교육문화도시 등 융합된 살기 좋은 정주환경을 갖춘 모범도시로 건설하고자 한다"는 추진배경 문구가 매우 선동적인데, 평지에 지은 데다 도로도 넓고 건물 간격도 넉넉해 시각적으로 개방감을 선사하는, 쾌적한 도시라는 점은 인정할만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농어촌공사, 한국전력공사,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의 공공기관이 빛가람에 본사를 두고 있다. 혁신도시의 향후 발전이 기대된다.

정오에 출발해 4시간 이상 운전해 도착했지만 업무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공공기관 업무들이 대개 그러하듯 이메일로 간단하게 마칠 일을 꼭 먼 걸음하게 만든다. 물론 이 핑계로 나주에 입성했지만…….

퇴근시간을 피해 출발해야 하니 서너 시간 소일하기로 했다. 서울에서부터 이미 나주곰탕을 염두에 뒀기에 가장 유명하다는 '나주곰탕하얀집'으로 일단 자리를 옮겼다.

 

나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곰탕집은 금성관 바로 앞, 곰탕거리 모퉁이에, 아주 목이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주 명물 #01 금성관

해가 뉘엿거릴 때 곰탕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없어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나오는데, '나주목문화관'과 '금성관'이 보였다. 식사는 급하지 않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코로나 19로 관람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출입이 가능했다.

'나주목문화관'을 목공예 관련 시설이라 짐작했지만, 알고 보니 나주목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여기서 ‘목’이란 고려·조선시대 행정단위로 요즘의 시나 군을 일컫는다. 전라도가 북도의 '전주'와 남도의 '나주'를 합친 말이니 나주의 중요함을 설명하는 것은 부언일 테다. 문화관은 전남에서 유일하게 목으로 지정된 나주의 역사적 기록, 인물, 사건 등을 다양하게 시각화해 설명해 준다. 문화해설사도 상주하고 있어 더욱 풍성한 이해가 가능했다.

 

사진출처 :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대한민국 구석구석

나주목문화관 건너편에 금성관이 자리 잡고 있다. 추후에 알게 됐는데 나주시의 관광은 금성관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재라 할만하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금성관(錦城館)은 1373년(고려 공민왕 22)에 창건되어 1603년(선조 36)에 크게 중수했고, 1976년에 해체 후 복원공사를 시행해 지금에 이르렀다. 1972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에 지정되었다가, 2019년 10월 25일 보물 제2037호로 승격됐다.

 

 

 

공무차 나주에 방문하는 관리와 외국 사신들이 머물던 객사로 활용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천일의 출병식이 있었고, 일제에 의해 시해된 명성황후의 관을 모셔 항일정신을 높이기도 한 곳이란다.

주변에 거치적대는 건물 없이 하늘에 맞닿은 금성관을 바라보면 수백 년을 지켜온 역사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담 너머로 고목이 가지만 남겨 고고해 보였지만, 해가 산을 넘으며 뿌린 다홍빛 석양이 이파리라도 되는 양 나무 가지 주변을 물들였다. 잊히기 힘든 광경이다!

 

 

 

나주 명물 #02 나주곰탕

한 세기를 지켜낸 맛이라는 건 본디 거창하지 않고 솔직하다. 소문대로 나주곰탕의 맛은 만족스러웠다. 심심한 첫맛과 달리 뒤로 갈수록 끌리는 감칠맛이 의외였다. 함께 내어준 머릿고기도 비린맛 없이 깔끔했다. 양도 적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판단 착오였다. 성인 남자가 먹기에 적절한 양이었다.

 

 

 

나주 명물 #03 나주읍성 고샅길

곰탕으로 채운 배를 달래려 크게 원을 그리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았는데, 나주읍성 고샅길이었다. 나주읍성 고샅길은 동부길과 서부길로 나뉘는데, 의도치 않게 나주천을 따라 금성교를 지나쳐 서성문까지 이어지는 동부길과 서부길을 모두 걸었다. 천변 주변에 펼쳐진 동네 풍경, 좁은 골목 사이로 전해지는 정서가 청춘 멜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설레었고 아기자기했다.

 

'박남일'의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 말 풀이사전(2011)'에 따르면 "고샅은 본래 ‘좁은 골짜기’를 뜻하는 말이나, 요즘에는 마을의 좁은 길목을 뜻하는 말로 통한다"고 한다. 골목은 좁았지만 낮은 건물 덕에 주변과 조화롭게 어울렸다. 사진은 동부길 근처에서 발견한 나주나빌레라문화센터 전경이다.

특히 서성문의 풍경은 훌륭했다. 성벽 없이 홀로 선 채 말이라도 거는 것 같았는데, 일제가 민족혼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읍성 전체를 부숴 성문만 우선적으로 복원했다는 설명을 읽고 나니 숙연해졌다. 성벽 없이 복원된 성문이 외면할 수 없는 질곡의 역사를 상기시켰지만, 오히려 미완의 읍성이 치욕의 역사를 후대에 전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 안심하기도 했다.

 

 

 

여행의 끝, 새로운 여행의 시작

두 시간 정도 산책하고 상경길에 올랐다. 예상대로 정체 없이 수월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피곤했는지 지인은 출발하자마자 잠이 들었다. 딱히 야속하다거나 염치없다 생각하지 않았다. 서너 시간 둘러본 나주가 왕복 8시간 동안 운전한 수고를 보상하고도 남았다. 오히려 볕이 좋을 때 숙박을 일정에 넣어 재방문하고 싶은 욕구가 끓어올랐다. 여유 있게 볕을 쬐며 고샅길을 걷게 될 여행의 순간을 욕망하며, 그렇게 난 고샅길과 사랑에 빠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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