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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③ 각양각색의 웨스트엔드

사사로운 여행 가이드 Mauvais sang 2021. 2. 24. 09:55
지난 이야기
2015년 2월 설연휴, 런던여행을 감행했다. 숙소가 세인트 제임스 파크(St James's Park) 옆에 위치한 덕에 웨스트민스터 시티의 주요 명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 궁(Westminster Palace), 빅 벤(Big Ben), 런던아이(London Eye), 버킴엄 궁전(Buckingham Palace) 등을 도보로 둘러보기 수월했다. 런던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해 투어버스를 탑승했고, 템즈(Thames)강 위에서 크루즈를 타고 런던을 관조하기도 했다.
사진은 중국 춘절에 방문한 웨스트엔드(West End)의 차이나타운 모습이다.

웨스트엔드(West End)가 행정구역이 아니라 런던 시민들이 구획해 놓은 관념의 일종이라는 사실을 접하면 의아하지만, 우리나라에도 '강남'이라는 관념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이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웨스트엔드는 런던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지구이자 문화지구로 소호(SOHO), 차이나타운,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등을 포함하고 있다. 런던에 발을 디딘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이 지역을 거쳐갈 수밖에 없을 만큼 광범위하고, 볼거리, 먹을거리, 살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웨스트엔드의 남쪽 모퉁이, 피카딜리 서커스

피카딜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는 1.6㎞ 남짓한 피카딜리 거리의 동쪽 끝에 위치한다. 높고 뻣뻣한 목 부분의 옷깃을 뜻하는 피카딜리(Piccadilly)와 원을 뜻하는 라틴어 서커스(Circus)의 합성어로 피카딜리 거리의 원형 광장이란 뜻임을 알 수 있다.

17세기 초 한 부호가 피카딜리 홀(Piccadilly Hall)이라는 건물을 지은 이후 이 지역에 '피카딜리'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당초 원형 광장이었지만 도시가 성장하며 여러 도로들의 교차점이 돼 19세기 말 원의 모습을 상실하고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원형 광장이 아니다.)

 

위 사진은 2015년 2월, 아래 사진은 1962년도 피카딜리 서커스의 모습이다. 네온으로 채운 광고판만 다를 뿐 현재 모습에서 급격한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 : Andrew Eick, CC BY 2.0, via Wikimedia Commons)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광고를 볼 수 있는, 건물 전체를 뒤덮은 광고판이 이 지역의 명물로 글라스하우스가(Glasshouse St.)와 샤프츠버리가(Shaftesbury Avenue) 사이, 소호(SOHO)의 남쪽 끝에 위치한다. 특이하게도 건물의 이름은 알려진 바 없다. 삼성은 1994년부터 현대는 1997년부터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했다는데, 코카콜라는 1954년부터 광고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반짝이는 광고판을 배경으로 엉켜있는 관광객들과 행인들, 2층 버스(Double Decked)를 바라보는 것이 소일거리가 되는 공간이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할 수도 있다. 압도적인 규모의 건물도 아니거니와 교통체증과 밀려드는 인파로 갈피조차 잡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웨스트엔드의 백화점, 소호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옥스포드 서커스 쪽으로 걸으면 웨스트엔드의 동북쪽을 차지하고 있는 소호를 관통하게 된다. 세계적 기업들의 진열대마냥 골목마다 익숙한 간판들이 고개를 내민다. 거리 전체가 백화점의 매대 같다. 우리나라의 명동이나 도쿄의 긴자와 다를 바 없는 지역이지만, 묘하게 통일성을 갖춘 고만고만한 5층 높이의 낮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어 사뭇 다른 정서를 자아낸다.

 

소호의 카나비가(Carnaby St.)다. 150m 정도의 짧은 거리지만 런던의 패션거리이며, 비틀즈(Beatles)·미니스커트·성적해방운동 등으로 대표됐던 1960년대 런던의 청춘문화 발상지 중 하나다. 스윙잉 런던(Swinging Lodnon) 또는 스윙잉 식스티즈(The Swinging Sixties), 우리말로 풀이하면 '신나는 런던', '신나는 60년대' 정도로 불리던 문화 현상은 런던에서 시작된 하위문화인 모드(Mod)에서 발전된 형태로 런던을 패션, 음악, 대중문화와 동의어로 치환했고, 런던의 팝과 패션을 외국에 전파하는데 공헌했다.
이는 웨스트엔드 지역의 젊은 중산층에 국한된 문화로 영국 전지역, 전세대를 지배한 문화는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강남을 중심으로 형성된 '오렌지' 문화와 유사하다. 오렌지 현상은 우리 문화의 전 지구적 전파에 도움이 된 바 없지만, 전후 베이비붐 세대 이후의 풍족함과 도덕적 해이, 패션·소비문화의 확산 등 비슷한 구석이 많다.

소호의 동북쪽 끝에는 '자유'라는 이름의 백화점 리버티(Liberty)가 위치해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백화점 역시 낮은 층고의 건물인데 특이하게 목조건축물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꽃무늬 가득한 원단으로 유명한데, 목재로 마감된 내부장식과 어울리며 옛것의 감성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판매하는 물건들이 고가라 나 같은 일반 관광객은 흥미를 잃을 법도 한데, 품격을 잃지 않는 내부 장식과 오래된 원단 가게 등을 둘러보는 것 또한 소소한 재미를 준다.

더불어 벽시계도 명물이다. 백화점 두 동을 연결한 다리에 설치되어 있는 시계에는 백마를 탄 성 조지(St George)와 녹색 용의 조각이 보인다. 매 1시간마다 15분 동안 성 조지가 재물로 바쳐질 공주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용과 벌이는 전투를 재현해 보여준다. 당연히 용의 죽음이 결말이다.

 

시계 위쪽에 성 조지와 녹색 용이 살짝 보인다. 시계의 사면 모서리에 바람을 형상화한, 날개를 단 머리가 조각돼 있고, 그 왼쪽에 아침을 상징하는 수탉을, 오른쪽에 밤을 상징하는 부엉이를 조각해 넣었다. 황금빛 문장 아래 모래시개를 들고 있는 '시간의 할아버지(Father Time)'가 보인다. 한 가지 더! 시간을 알리는 로마자의 표기 중 4를 'Ⅳ'가 아닌 'IIII'로 표기하고 있다.

밑에 금색으로 각인한 문구도 아름답다.

no minute gone comes ever back again, take heed and see ye nothing do in vain.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주의를 기울이고 헛된 일은 하지 않아야 함을 명심해라.

웨스트엔드의 보색관계, 닐스야드와 차이나타운

웨스트엔드의 동쪽, 코번트 가든(Covent Garded) 구석에 위치한 작은 골목인 닐스야드(Neal's Yard)는 녹색을 중심으로 배색된 알록달록한 채색이 일품이다. 푸릇푸릇한 분위기에서 느껴지듯 친환경 식자재와 제품을 판매하는 곳으로 대안 운동가가 기획한 지역이다. 소호를 배회하다 차 한잔 하며 숨 돌리기에 적합한 곳이 아닐 수 없었다.

 

크레파스로 칠한 듯 녹색을 중심으로 꾸며진 닐스야드의 골목 풍경이다.

웨스트엔드 중앙에서 왼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차이나타운이 자리 잡고 있다. 초록색의 닐스 가든과 보색 대비를 이루려 작정한 듯 차이나타운에는 예의 붉은 기운으로 가득했다. 커다란 홍등으로 장식한 거리 곳곳이 마치 '웨스트엔드의 심장부는 이곳 차이나타운이다'라고 선포하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 중국 춘절에 방문해 많은 이들이 중국의 명절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거리를 가득 메웠고, 식당마다 대기자의 행렬로 어수선했다. 런던 여행에서 미식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차이나타운에서 음식다운 음식을 맛보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우리나라 설날 때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영국에서, 그것도 춘절에 만날 줄 생각이나 했겠는가?

별 수 없이 매끼 물릴 만큼 먹었던 피쉬 앤 칩스(Fish & Chips)를 저녁 삼아 생맥주로 허기를 채웠다. 벗어날 수 없는 인생의 굴레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설 명절을 피해 당도한 런던에서 춘절과 맞닥뜨리다니…….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니, 주의를 기울여 헛된 일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말이다.

 

호텔 근처에 위치한 펍에서 시킨 피쉬 앤 칩스이다. 다양한 식초를 뿌려 먹게 되어 있다. 몇 번 먹으면 맛있지만 매끼 먹게 되면 물리는 건 당연지사다.

 

[4부에서 계속]